지금이야 섹스는 본능적인 생식과 후손의 번식 욕구를 넘어 사랑의 표현, 욕망의 해소, 쾌락과 즐거움의 놀이로 여겨지지만 지금의 ‘섹스’ 이전으로 돌아가 태초 조상들의 짝짓기는 결국 ‘배우자의 선택’ 이라는 카테고리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여성이 배우자를 선택할 때 복잡한 요소들이 작용하는데, 이는 생물학적 성에 대한 이해와 관련이 있다고 보여진다. 단적인 예로, 인간 남성은 수백만 개의 정자를 만들며 이 정자들은 시간당 1,200만 개씩 새것으로 교체된다고 한다. 반면에 여성은 평생 400여 개의 정해진 수의 난자를 만들며 이미 만든 난자를 새로 교체할 수도 없다. 이러한 차이들은 여성이 까다롭게 배우자를 선택하는 이유 중 하나로 작용한다. 번식 행위로 인해 임신과 수유라는 짐을 짊어짐과 동시에 이 귀중한 번식 자원을 아무 남성들에게나 선사할 수 없는 생리학적 특성은 여성이 자신의 번식 자원을 보호하고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적합한 배우자를 선택하는 데 영향을 주며, 이러한 관점은 여성의 배우자 선택에 대한 복잡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재밌는 점은, 우리 조상 여성들이 남자를 고르던 방식은 현대사회로 이어지며 그 행태만 조금씩 바뀌었을 뿐 본질적인 이상향은 거의 동일하게 전수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 조상 여성이 두 남자 사이에서 한 명을 고르려고 한다고 가정해 보자. 한 남자는 자기가 가진 자원을 아낌없이 내놓는 사람인 반면에 다른 남자는 아주 인색한 사람이다. 다른 조건들이 같다면 이 여성에게는 인색한 남자보다 관대한 남자가 더 가치 있다. 그 관대한 남자는 아마도 자기가 사냥해서 얻은 고기를 그녀에게 나눠 주어 그녀의 생존을 도울 것이다. 장차 그녀와 함께 낳은 자식들을 위해 자기의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자원을 희생하여 결국 그녀의 번식 성공도를 높여 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이 관대한 남자가 인색한 남자보다 배우자로서의 가치가 더 높다.”
데이비드 버스, 『욕망의 진화: 사랑, 연애, 섹스, 결혼. 남녀의 엇갈린 욕망에 담긴 진실』, 사이언스북스, 2013, 여자가 원하는 것.
고대 수렵 사회 뿐만 아니라 농경 사회, 산업 사회 모두를 떠올려 봤을 떄, 누가 봐도 가장 이상적인 배우자는 신체 조건이 뛰어나고 힘이 세며 체력이 좋은 남자일 것이라는 사실은 쉽게 유추해 볼 수 있다. 하지만 거기서 한 발 나아가 본능적으로 ‘성격이 좋은’ 이성에게 끌리고, 그것이 성관계로 이어지는 발판이 된다는 사실은 여성이 배우자를 선택할 때 고려해야 할 더욱더 다양한 요소들이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조상들의 남자 고르는 눈은 건장한 신체에서 남자다움으로, 남자다움에서 심미적 아름다움으로, 곧 외모와 단단한 근육 그리고 패션과 미소로 옮겨왔다. 관대한 성격 또한 생존을 도우는 희생에서 경제적 능력, 사회성과 유머감각, 끝내 잠자리에서의 애무 스킬으로까지 발전해왔다.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인정되고 남녀의 평등함이 당연시 됨에 따라 선택의 폭은 더욱 넓어지고, ‘배우자로서의 남성’ 대신 다양한 ‘매력적인 남성’이 성관계의 대상이 될 때 만족도가 더 높도록 진화한 것이다. 이는 진화학적으로 남성이 여성 배우자를 선택할 때 상대적으로 여성보다 몸매와 젊음, 신체적인 외형을 더 중요한 조건으로 여기는 것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처럼 보인다.
태초의 ‘짝짓기’가 지금의 ‘섹스’가 되었듯, 시간이 흐르고 가치가 변하면서 ‘완벽한 배우자의 조건’이 더이상 ‘완벽한 파트너의 조건’으로 성립하지 않는 시대가 도래했다. 단순한 번식 활동이 아닌, 본능적이지만 본능 뿐만은 아닌 섹스를 통해 여자가 얻고자 하는 것. 결국은 남자와 다르지 않은 즐거움일지 모른다. 남과 여의 신체 발달은 진화학적으로 무언가를 따라 왔겠지만, 그 종착점은 결국 合(합)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