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콜과 함께하는 분위기

술에 취하고 분위기에 취하는 알코올 레시피

2024년 04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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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밤이 있다면 둘 사이에 친구는 없다는 말이 있다. 가까워지고 싶은 누군가와의 시간을 보낼 때, 알코올만이 줄 수 있는 생소하면서도 몽롱한 분위기의 힘은 절대 무시할 수 없다는 말일 것이다. 곁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이제껏 하지 못 했던 말을 술의 힘을 빌려 전해보고 싶지는 않은가? 술알못도 쉽게 도전할 수 있는 위스키,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폭탄주 제조법, 알코올 초심자를 위한 음료보다 맛있는 칵테일까지. 어떤 분위기든 후끈하고 알딸딸하게 만드는 몇 가지 알코올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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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번

술이라면 소주와 맥주를 떠올리던 날들은 조금 뒤로 보내주자. 보드카, 진, 럼… 많은 주류 중에서도 분위기 좀 잡아볼까 할 때 추천하고 싶은 술은 위스키다. 위스키에도 수많은 종류와 이름, 가격대가 존재하지만 누군가 딱 하나만 꼽아달라 청하면 고민하지 않고 ‘벤치마크’를 권한다. 가장 합리적인 가격이면서 맛 또한 빠지지 않는 이 술은 소주에 콜라나 사이다를 섞어 마시던 가성비로도 충분한 묵직함과 진솔함을 챙길 수 있다. 진저에일, 토닉워터, 순수한 얼음까지 안 어울리는 조합이 없는 술이 위스키다. 더 큰 장점은 대형마트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술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만큼 접근성은 떨어지지만 조금은 색다른 분위기를 잡아 보고 싶을 때 준비하는 술이라면, 심지어 가격까지 저렴하다면 많은 사람의 눈에 띄어서 좋을 것이 없다. 대신 와인앤모어 같은 주류점을 방문한다면 쉽게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여느 때와 조금은 다른 여행같은 데이트를 즐긴 날, 잘 정돈된 깔끔한 숙소에서 얼음과 버번을 준비해 서로 마주 앉아보자. 쌉쌀하고 향긋한 분위기에 한 모금, 두 모금 마시다 보면 몇 잔을 채 들기도 전에 오르는 열에 따뜻해진 볼을 맞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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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맥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맥이 취향인 사람에게 딱 맞는 꿀조합이 있다. 소주의 얼큰함과 맥주의 편안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으면서도 어디서나 구매 가능한 편의점 조합의 궁극체라고 할 수 있다. 드르륵 소리를 내는 편의점 의자, 일명 진실의 의자에 편히 걸터앉아 우정과 사랑 사이의 아슬아슬한 선을 넘어보고 싶은 날 딱인 술이다. 편의점에서 파는 얼음컵, 4캔 만원 (지금은 물가가 올라서 만 이천원) 기네스 드래프트 캔맥주, 아무 브랜드의 소주가 레시피의 끝이다.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술을 섞는 폭탄주이지만 따로 컵을 준비할 필요도 없다.

제조방법은 간단하다. 얼음컵의 껍질을 깐다, 맥주의 캔뚜껑과 소주의 뚜껑을 딴다, 소주 1 : 기네스 : 3의 비율로 소맥을 제조한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첫째, 얼음컵을 까기 전에 손으로 주물러서 덩어리진 얼음을 부수기. 둘째, 기네스를 따르기 전에 반드시 소주를 먼저 따르고, 천천히 잔을 기울여 기네스를 따라주기. 이렇게 몇 초 되지 않는 시간이 지나면 갈색이던 맥주의 색이 콜라 같은 검은색으로 변해가고, 켜켜이 내려앉던 거품들도 이내 카푸치노 거품처럼 쫀쫀한 층이 되어 떠오른다. 별 것 없는 심플한 제조과정과 주의사항을 거쳐 만들어진 기맥의 맛은 가히 기가 막히다. 소주의 달큰함과 흑맥주의 담백함, 기네스 특유의 부드러움이 더해져 소맥 고수도 한잔에 취하는 술과 분위기가 완성된다. 한 가지 당부하는 것은 얼음이 없이는 최고의 맛이 나지 않으니 반드시 얼음을 준비할 것. 이윽고 다가올 봄, 기분 좋게 따스한 공기를 마주하며 시원한 기맥과 함께하는 진실게임. “가까이 와봐.” 하는 말로 당겨 앉아 거품이 가라앉는 잔을 함께 가만히 들여다 볼 때. 커지는 심장소리까지 침을 삼키게 만드는 밤.

© Cocktail contessa, Ultimate Fig Cocktail: the Fall Amaro Highball

무화과 하이볼

최근 한 방송에 소개가 된 후로 이자카야나 펍에서 얼그레이 하이볼이 소소하게 유행중이다. 그냥 마셔도 맛이 없기가 쉽지 않은 하이볼에 얼그레이 시럽을 추가한 이 칵테일은 하이볼의 변화무쌍함을 보여주는 예시였다. 한때 생맥주에 여러가지 시럽을 펌핑하여 불티나게 팔렸던 것 처럼, ‘시럽’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그 중에서도 맛과 감성까지 잡을 수 있는 메뉴가 바로 무화과 하이볼이다. 사실 이 칵테일 제조에 쓰이는 시럽은 디저트를 만들 때 사용하는 베이킹 재료에 가깝지만, 맛만 좋다면 용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만드는 방법은 얼그레이 하이볼과 동일하다. 하지만 나는 기존에 널리 알려진 토닉워터를 사용하는 레시피보다는, 탄산수가 들어가는 레시피를 추천하고 싶다. 무화과 자체의 향과 맛을 진하게 내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양의 시럽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재료만 충분하다면 사먹는 하이볼보다 만들어먹는 하이볼이 훨씬 합리적이고 취향대로 레시피를 조절하기 좋기 때문에 ‘너만을 위해 만들었어.’ 라는 농담을 붙이기에도 제격이다. 부쩍 가까워진 사이, 시끌벅적한 사람들을 피해 둘만의 공간에 남고 싶을 때. 우리 집에 와서 저녁 먹을래? 맛있는 거 만들어 줄게. 요리 잘은 못하는데 좋아해. 뭐 먹고 싶어? 진부하지만 귀여운 멘트들을 곁들여 초대한 그에게 꼭 해야 할 질문은 하이볼 좋아해? 이다. 좋아한다고 하든, 별로라고 하든 대답은 크게 중요치 않다. 맛있는 하이볼 레시피 아는데, 한 잔 마셔 볼래? 부담스럽지 않게 권한다면 십중팔구 다음 잔을 주문하게 될 테니 말이다. 오늘의 바텐더가 술과 함께 건네는 무한 플러팅에 하이볼만큼 달달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저녁만 먹고 가려던 그 사람도 마음을 바꿔 긴 밤을 함께 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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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느때보다 분위기가 중요한 날, 지금까지 소개한 비밀스러운 알코올 친구들을 잊지 않았다면, 오늘이야말로 서로가 서로에게 취하는 날이 될지도 모른다. 물론, 지나친 음주는 신체의 건강은 물론이고 관계의 건강에도 좋지 않다는 사실을 경험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드라이한 관계에 뜨거운 기운이 오르게 하는 비법. 다음엔 우리 술 한 잔 할까, 내가 맛있는 술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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