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고 싶지만 알지 못했던 것
자신의 몸과 성에 대한 관심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호기심을 채울 수 있는 학창 시절의 성교육을 떠올려보면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기억들이 많다. 무료한 표정의 보건 선생님이 여성의 월경과 남성의 몽정 또는 자위, 콘돔 등을 설명하면 학생들의 반응은 대부분 두 가지로 나뉜다. 듣는다고 하더라도 관심을 가지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하거나 과도한 반응으로 다른 학생들을 불편하게 만들거나. 그 이유는 전자의 학생의 경우 성교육에 관심을 보였다간 학교를 다니는 내내 놀림거리가 될 것이기 때문이고, 후자의 학생의 경우 실제로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섹스에 대해 아는 척을 하는 것이 성숙함을 으스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이러한 분위기는 남학생과 여학생이 함께 있는 학교에서 두드러졌다. 덕분에 성교육이란 굉장히 현학적이고도 딱딱한 환경에서 이루어질 수 밖에 없었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면 수정이 이루어지고 임신이 된다는 것을 배우면서도 정작 여자 몸속의 난자와 남자 몸속의 정자가 어떻게 만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는 식이었다. 성관계라는 말은 사용하면서도 섹스는 외설적으로 여기는 시선과 동일한 현상이었다.
평범한 대한민국 가정에서 자라 초, 중, 고 모두 남녀공학을 나온 에디터의 성교육 현황 또한 처참했다. 정자가 정액을 통해 배출이 되고 난자가 배란을 통해 배출된다는 것까진 알아도 그 결합 과정에 ‘삽입’이라는 적극적인 행위가 수반된다는 것을 알아채기까진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으니 말이다. 이렇듯 결과적으로 지금까지 받아온 보수적인 방식의 성교육은 여성들이 실질적으로 건강한 성생활을 영위하는 것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그 어떤 성교육 시간에서도 클리토리스의 역할에 대해, 처녀막의 실존 여부에 대해, 음부와 그 속의 소음순의 모양에 대해, 오르가즘에 대해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당연히 궁금해도 물어볼 수 없었다. 실제로 꽤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질과 요도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으며 심지어는 성인이 되기까지 자신의 성기를 제대로 확인해 본 적 없다는 경험담을 쏟아내곤 한다. 하지만 이러한 청소년기를 지내왔다고 해서 계속해서 성에 대해 무지한 채 닫혀 있는 상태로 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채우지 못한 성적 호기심을 해소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중 여성들이 자신의 몸을 탐구하고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영위하는 데 있어 도움이 될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 마이 시크릿 닥터, 리사 랭킨
⌜마이 시크릿 닥터⌟(2014, 리사 랭킨, 릿지)의 저자인 리사 랭킨은 산부인과 전문의이자 통합의학 전문가이다. 랭킨은 여성들이 산부인과를 어려워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 책을 저술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마이 시크릿 닥터⌟는 여성들이 궁금해할 다양한 산부인과 관련 정보를 담고 있는 것은 물론 산부인과 전문의로서 겪었던 다양한 경험, 심지어는 랭킨 본인의 은밀한 이야기까지 책 속에 풍부하게 담아내었다. 이에 대해 연애의 교과서라고 불리는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의 저자 존 그레이는 차마 묻지 못했지만 반드시 알아야 하는 여성에 대한 정보가 가득하다며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총 15챕터로 이루어져 있는 ⌜마이 시크릿 닥터⌟는 소제목만 보더라도 흥미로움을 감출 수가 없다. 에디터가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챕터 3 ’냄새나고 축축할지라도-그곳의 냄새와 맛’이었다. 챕터 3은 여성의 질에 대한 다양한 궁금증에 대해 서술하는 파트로, 질의 냄새와 맛에 집중한다. 여성의 질에서 특유의 냄새가 나는 것은 여성의 생체 환경상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뭇 여성들은 자신의 질과 그 냄새를 더럽고 나쁜 것이라 여긴다. 랭킨은 여성이 스스로를 향해 이러한 여성 혐오적 시선을 보이는 것은 다수의 사람들이 정상적인 신체 기능(예를 들면 성기, 소변, 대변, 항문 등)을 떠올릴 때 역겨운 것으로 배워 왔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꽃에서 꽃 냄새가 나고, 생선에서 생선 냄새가 나는 것이 당연하듯 질에서 질 냄새가 나는 것도 질의 당연한 권리이자 건강함의 신호라는 것이다. 물론 세균성 질염 등 건강 상에 문제가 생겼을 때 악취가 날 수는 있으나 그것은 말 그대로 건강의 문제로 치료하면 되는 것이지 더러워서가 아님을 역설한다. 랭킨은 오럴섹스에 대해 고민하는 여성들을 위해 심지어 실제로 자신이 먹어보기도 하고 자신의 남편, 주변의 양성애자, 레즈비언 친구들에게 물어 질의 맛(!)이 어떤지에 대해서도 기록했다. 플레인 요구르트, 익은 망고, 소금기 있는 비누, 동전 등 생각지도 못한 표현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독자에게 권유한다. 자신이 어떤 맛인지 궁금하다면 직접 맛보라고 말이다. 여성의 음부와 체액은 더러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성의 몸에 대해 말하는 것에 있어 더 이상의 내숭은 없다. 지나치게 학문적인 접근도 없다. 명료하고 직설적인 문체로 여성이라면 공감할 만한 경험들과 궁금증에 대해 화통하게 설명한다. 혼자가 좋은 싱글 여성, 파트너가 있는 커플 여성, 미혼, 기혼할 것 없이 한 번쯤 탐독해 볼 것을 추천한다. 이 책 한 권만 보더라도 여성이 가질 수 있는 섹슈얼리티 관련 고민들이 다수 해결되지 않을지 감히 추정해 본다. 자신의 몸에 대해 무관심하고 성적 호기심을 감추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시대가 되었다. 스스로의 가능성을 탐구하고 자신의 행복을 찾는 여정을 떠나야 할 때인 것이다. 인생의 큰 즐거움 중 하나인 성생활을 위해, 나아가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본인의 몸과 마음을 바라보는 기회를 ⌜마이 시크릿 닥터⌟가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