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주작이 아니야..
“그레이, 디씨인사이드 오나홀 갤러리라고 알아요? 거기서 지금 로마 알바질한다고 욕 엄청 먹고 있어요.” (응? 이게 무슨 말이야… 난 아무것도 한 게 없다구….) 마케터가 내게 보여준 내용은 이러했다. (실제 디씨 커뮤니티 – 오나홀 갤러리에 올라왔던 이미지) 타 커뮤에서 일본산 오나홀에 대한 후기를 작성한 적은 있었지만, 디시인사이드라는 커뮤니티에 직접적으로 캔들에 대한 후기나 알바 작업을 진행했던 적은 단연코 없었기 때문에 내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억울한 상황이었다. 어찌됐건 상황은 파악해야했다. 저 글 들이 올라온 날짜를 기준으로 이전에 올라왔던 글들을 하나하나 확인했고 중간 중간 로마 캔들에 대한 내용이 댓글에 언급되거나 사용법에 대한 글들이 올라와있었다. 물론 굳이 내가 직접 해명이나 대응을 할 이유는 없었다. 우린 아직 유명한 브랜드도 아니었고, 그때만 해도 악플 혹은 저런 글이 올라오는 것 자체가 로마에 대한 관심의 표현이라고 감사히 생각했다.
02. 오나홀 갤러리에서 캔들을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단순 이슈 정도로 생각하고 하루 하루를 ‘생존’이라는 문제와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쯤 마케터가 다시 날 불렀다. “그레이, 디씨 오나홀 갤러리에 글 썼어요??? 그레이가 쓴 거 너무 티나는데…” (응? 또 무슨 말이야… 이번에도 난 아무것도 한 게 없다구…. 222) (마케터가 나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던 실제 게시물) 솔직히 내가 봐도 의심될 법 했다. 일단 제목부터 타이트 링-캔들에 들어가는 보조링-을 홍보하겠다는 의지 표현이 담긴 문장과 함께 업로드 된 사진 역시 딱 캔들만 잘라서 올린… -이거 누가 봐도 주작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잖아…- 솔직히 재밌었다. 커뮤니티에서 내가 만든 제품이 저렇게 자연스럽게 바이럴 된다는 것은 너무나도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런 기분 좋은 생각도 잠시, 마케터가 내게 말한 것처럼 이 게시물 역시 로마 알바가 일 열심히 하네 정도로 치부될 것 같았다. 게시물이라는 것은 어찌됐건 당사자가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공들인 하나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렇게 작성한 글이 홍보, 알바로 치부되고 사람들이 무시한다면 작성자는 김이 빠질 것이고, 그런 일들이 반복되면 결국 로마를 정말 좋아하는 유저들조차도 오나홀 갤러리에는 캔들에 관한 글을 쓰지 않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런 생각이 든 순간 내가 해야할 일은 명확해졌다. ‘실제 유저들이 앞으로 오나홀 갤러리에서 캔들을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제일 먼저 들었던 생각이다. 적어도 로마를 사용하고 정말 좋았던 경험을 선물받은 유저들이 사람들의 시선때문에 로마 캔들 후기 작성을 망설이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 내 신상을 노출하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은 전혀 두려운 일이 아니었다. 익명으로 로마입니다. 하고 올려도 되는거 아니야?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솔직함으로 접근하고 싶었다. 안그래도 커뮤니티에서 존재하던 로마 캔들 혹은 국산 제품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바꿔가려면 솔직하게 내 모든 걸 오픈하고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제품을 개발하면서 느낀 것은 ‘오 이거 정말 좋아요. 최고였어요!’ 이런 무조건적인 칭찬의 피드백보다도 ‘어떤 점은 아쉬웠고 어떤 부분을 개선하면 더 좋은 제품이 나올 것 같아요.’ 같은 피드백이 훨씬 더 피가 되고 살이 되었던 것 같다. 그런 점에서도 오나홀 갤러리에 캔들에 대한 리뷰가 올라왔을 때 ‘로마 캔들 OO 별로던데’ 이런 댓글이 달리는 것은 두렵지 않았다. 내가 캐치하지 못했던 부분에서 인사이트를 얻을 수도 있고 이는 더 좋은 제품을 개발하는 발판으로 삼을 수 있으니까. (물론 또다른 생각으론 자극에 대한 평가는 주관적일 수 있고 그런 댓글이나 피드백에 흔들릴 만큼 대충 만든 제품이 아니라는 자신감도 있었던 것 같다.)
03. 안녕하세요, 로마 캔들 제작자입니다.
그렇게 커뮤니티에 올릴 글을 써내려갔다. 내가 꼭 전달하고 싶었던건 3가지였다.
- 이 갤러리에서 작성되는 로마 후기는 절대 주작이 아니다. 리얼 후기다.
- 로마의 오리지널 제품군은 정말 자신있게 만든 제품들이다.
- 앞으로 이 갤러리에서 계속 활동하면서 오나홀 유저들과 소통하고싶다.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는게 어려웠지, 마음먹은 뒤로는 막힘없이 글을 써내려갈 수 있었다. (실제 오나홀 갤러리에 업로드 했던 게시물) 다행스럽게도 생각보다 갤러들의 반응은 훨씬 더 따뜻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게시물을 올리기 전까지만 해도 엄청난 비난(예를 들면 홍보라고, 혹은 국내산 저질홀 과장 광고라고..욕이라던가..욕이라던가…욕이라던가……)을 받으면 어떡하지? 라는 막연한 걱정이 앞섰던 것이 사실이니까. 글이 올라가고 정말 많은 댓글이 달렸다. 다들 응원해주고 현재 국산 오나홀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서 짚어주었기에, 나름대로 ‘실제 유저들에게 국산 브랜드 인식은 딱 이 정도구나.’ 라는 걸 다시 한번 느낄 수 있게 된 계기였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던 중 이런 댓글이 달리게 된다. (실제 유저가 달아준 이벤트 건의 댓글) 생각지도 못했다. 아니 생각하더라도 평소에 팀원들끼리 우스갯소리로 나누기만 했던 얘기였는데 실제 유저의 입에서 저런 이야기가 나오니까 띵 하고 머리를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이미 유저가 원하는 이벤트인데 우린 뭐가 두려워서 시도하지 않았던 걸까.
04. 진짜 재밌는 이벤트 한 번 해보자!
“저 DC에 글 올렸는데 이런 댓글이 달렸어요. 제가 봤을 때 정말 괜찮은 아이디어고 시도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요?” 우리 팀원들은 기본적으로 생각하는게 비슷하다. (음 평균적으로 텐션이 높다고 해야 하나.. 조금이라도 재밌어 보이는게 있으면 눈을 반짝이면서 달려들곤 한다. -내 착각일지도…-) 이번에도 역시 댓글에 대해 팀원들에게 내용을 공유하니 역시나 흥미로워하고 재미있어했다. 그럼 고민할 것도 없었다. 못먹어도 Go. 모두가 동의한 내용이다보니 이벤트 진행은 정말 말그대로 “빠른 실행” 이었다. (우리 조직의 핵심 가치 중 하나가 빠른 실행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빠르게 게시물을 작성했다. (실제 이벤트 게시글 이미지) 브랜딩 관점에서 보면 기겁할지도 모르겠다… “헌 오나홀 다오 새 로마 캔들 줄게.” 라니…….. (미안해요 마케터님, 미안해요 브랜드 디자이너님…) 일단 당시의 나는 무척이나 들떠있었다. 자타공인 프로 오나홀러(?)들이 모인 갤러리에서 이벤트를 통해 로마 캔들을 평가받을 수 있다는 점은 정말 너무나도 가슴 뛰는 일이었다. 물론 그만큼 제품에 자신이 있는 것도 있었다. 정말 열심히, 자신있게 만든 내 제품이 단순히 국산 브랜드라는 이유로 외면받는 것은 죽을만큼 싫었다. 그런데 이벤트를 통해서 유저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기존에 사용하던 오나홀을 폐기하고 로마 캔들을 경험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캔들에 유저들이 만족한다면!!! 이건 대박이었다. 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 이벤트랄까. 물론 오나홀은 워낙 주관적인 제품이라서 100% 만족이 안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로마 캔들은 5가지 패턴을 가지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게 우리의 이벤트는 시작되었다. 정말 많은 댓글이 달렸고 정말 많은 유저들이 이벤트에 참여해주었다. (댓글 수가 보이는가!) 감사히도 이벤트에 참여한 유저들은 스스로가 먼저 오나홀 갤러리에 캔들에 대한 리뷰를 작성해주기 시작했다. 오나홀 갤러리는 금방 캔들에 대한 리뷰와 캔들이 뭐야? 로마 캔들, 로마 머핀 등의 게시물들이 올라오는 빈도가 급증하기 시작했고, 오나홀 갤러리를 오랜만에 들어오는 유저들 역시 로마가 뭔데 요즘 이렇게 자주 올라오냐 등의 호기심 가득한 반응을 보이곤 했다. (이제 디씨 오나홀 갤러리에서 로마를 검색하면 6페이지나 결과물이 나온다. 저 맨 밑의 글은 반전이 있는 호평의 글이다ㅠㅠ저 분은 제목 어그로 성공하셨어…)
05. 이벤트, 로맨틱, 성공적.
(실제로 수령한 헌 오나홀들) 현재 로마 사무실에는 오나홀들이 수북하게 쌓여있다. (처분 아이디어 좀 주세요…) 사용한 오나홀과 함께 유저들이 편지와 간식을 넣은 택배를 보내줄 때는 내가 역으로 더 감동이었다. 매번 유저들과 소통하자, 제품을 사용하는 실소비자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자 등 생각만 하고 실현하지 못했던 일들을 실제로 진행하게 된 이벤트였던 “헌 오나홀 다오, 새 캔들 줄게.” 내 스스로도 한걸음 더 성장하게 된 계기였다고 평가하고 싶다. 실제 고객들은 기존 제품들의 어떤 점에 불만이 있는지 혹은 그들이 로마라는 브랜드를 알게 되면서 로마를 어떻게 생각하고, 로마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등의 정성어린 피드백까지. 우리의 생각보다 유저들은 훨씬 더 로마라는 브랜드에 애정을 가지고 바라봐주었다. 우린 대체 무엇을 그렇게 두려워 했던 걸까. 뒤늦게라도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게 되었던 이번 캔들 이벤트, 모 배우가 말했던 것처럼 이번 캔들 이벤트는 정말 로맨틱, 성공적. 이었다.
Epilogue. 함께 만들어요, 6번째 캔들.
이번 디씨에서의 좋았던 기억을 바탕으로 이제는 두번째 이벤트를 기획하려고 한다. 이름하여 “함께 만들어요, 로마 캔들” (이것도 즉흥으로 지었다…-난 마케팅에 재능이 없는건가-) 이전까지의 로마 캔들은 “컨셉 설정 → 3d 모델링 → 3d 프린팅 → 시제품 샘플링 → 시제품 유저 테스트 → 피드백 반영 수정 (반복) → 제품 출시” 의 과정을 통해 5가지의 패턴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다. 기존에 컨셉 설정 단계는 구성원들의 의견과 내 아이데이션을 바탕으로 진행해온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이번 이벤트를 통해 실제 유저들이 원하는 아이디어나 컨셉 패턴을 시제품으로 제작하고 유저들이 직접 테스트 및 피드백에 참여하여 새로운 캔들을 출시하려고 한다. 이미 디시인사이드 게시글들에 달린 댓글을 통해서 많은 유저들이 재미난 아이디어와 컨셉 패턴에 대한 의견을 내주었고, 실제 유저들과 함께 새로운 캔들을 함께 만들어간다면 훨씬 더 뿌듯한 일이지 않을까. (너무나도 열정적인 디시 유저가 보내준 새로운 패턴에 대한 아이디어) 이미 이런 형태로 자신의 아이디어를 얘기해주는 유저들도 있었고, 위의 아이디어는 컨셉이 너무 재미있는 것 같아서 헐레벌떡 3d 모델링을 해서 유저들과 의견 공유를 하기도 했었다. (유저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3d 모델링했던 시안과 유저들의 피드백) 오나홀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과 의견을 교류하며 함께 만들어가는 새로운 캔들이라니, 벌써부터 제품 디자이너로서의 가슴이 설레인다. 하루빨리 새로운 패턴 개발에 돌입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