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반부터 간간이 전해지던 지인들의 결혼 소식은 후반이 되자 이곳저곳에서 더욱 열렬하게 들려 오기 시작했다. 그 횟수가 계속해서 늘어나다 보니 이젠 웬만큼 친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사진은 고사하고 식도 잘 보지 않게 됐다. 성인이 된 후 처음으로 친한 언니의 결혼식에 초대되어 갔을 때 들었던 생각부터 ‘와, 여기 (결혼) 공장이네.’였던 걸 보면 애초에 결혼과 결혼식에 대한 낭만이 결여되어 있는 사람인 것 같기도 하다.
위즈덤하우스에서 출판된 김규진 작가의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 작가의 결혼 수기를 담은 에세이 도서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건의 결혼식이 이뤄지는 세상에 뭐 별것인가 싶지만 상당히 별것이다. 한국인 여성이 다른 한국인 여성과 결혼식을 올린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동성 결혼이 법제화되지 않은 국내 상황에서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 일인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책에는 현재의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게 된 과정뿐만 아니라 작가의 성 정체성에 관련된 에피소드들이 제시된다. 비율로 보면 작가의 개인 에피소드 30 대 결혼 이야기 70 정도인 것 같다. 작가의 이야기는 결혼 과정 설명에 앞서 기술되는데, 이를 통해 김규진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작가가 결혼식 과정에서 ‘특정한 선택’을 ‘왜’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해를 수반하도록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람의 성향은 너무나도 다양하기 때문에 설명이 없다면 작가가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공감하지 못할 수 있다. A에게는 인생을 걸 만큼 중요한 일이 B에게는 왜 그렇게 목매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일 수 있다. 그래서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에서는 작가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먼저 제시함으로써 독자가 작가의 상황을 이해한 후 결혼 과정을 함께 겪을 수 있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작가의 상황에 이입했던 독자로서 굉장히 성공적인 전략이었다고 생각한다. 결혼식 과정이 백배는 애틋해 진다.
유교의 아버지, 공자를 배출한 국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보다 유교를 숭상하는 대한민국에서 여자끼리 결혼을 마음먹고 실행에 옮기기까지는 다양한 문제가 발생했다. 대관할 결혼식장에 전화를 해보는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결혼 후 법적 문제와 같은 매우 큰 것에 이르기까지 쉬운 게 하나도 없다. 선택해야 하는 것도 아주 많았는데,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결혼식의 형태로 공장형 결혼식을 선택한 점이었다. 스드메(스튜디오 촬영, 드레스, 메이크업 – 일반적인 결혼식에 필수로 꼽히는 3대 요소의 준말)가 필요하며 결혼식장을 대관한 후 축하해 줄 청중을 초대하는, 사회자가 사회를 보고 사진 촬영 중에 부케를 던지는 그런 결혼식 말이다. 최근 이성 커플 사이에서도 공장형 결혼식을 올리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존재하고 개인적으로도 공장형 결혼식에 회의적인 입장이라서 그런지 처음엔 작가의 선택이 의아했다. 그 번거로운 과정을 굳이 왜?라는 아주 개인적인 입장에 기인한 것이었다. 하지만 남녀 커플이라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그 아주 평범하고 번거로운 결혼식이 동성 커플에겐 오랜 시간 허용되지 못했던, 그래서 꼭 하고 싶었던 결혼식의 모습이었음을 깨달았을 때 마음이 뭉클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국내 동성 결혼은 작고 소소한 규모로, 말마따나 그 두 사람을 사랑하는 매우 가까운 지인들만 모여 진행하는 것을 선호할 것이라 생각한 나의 무의식적인 선입견에 놀랐으며 반성했다.
딸과 결혼할 여자친구와 처음 만난 자리에서 30년 전 자신이 동성동본 결혼을 했고 당시에는 엄청난 반대를 받았지만 지금은 결혼에서 동성동본 따위는 신경도 안 쓴다고, 앞으로 30년이 지나면 너희도 그렇지 않겠냐고 응원을 해주는 아버지가 있다. 그리고 일면식도 없는 어떤 여성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돈을 사용해서 결혼식을 올린 모습을 보고 레즈비언이라는 이유로 욕과 성희롱을 남발하다가 고소를 당한, 이름 모를 딸아이의 아버지도 있다. 두 가지의 모습 중 어떤 것이 정상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다 알 것이다. 정상을 정상이라고 자연스럽게 여길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